임영웅, 누군가 아이돌을 묻거든 [MD칼럼]

[강다윤의 카페인]

"운명 같은 시간 지금 우리 함께해 영웅시대 사랑해."

구일역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머리띠와 모자부터 후드와 패딩까지. 공연장을 들어가기 전부터 '영웅시대'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추위와 설렘에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이들이 구일역 특유의 좁은 출구에도 질서 정연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으로 꽉 차 흔들릴 것 같은 돌다리와 옹졸하게까지 느껴지는 앞마당에는 '영웅이', '우리 영웅님'을 이야기하는 부모님뻘 분들이 많았다. 굽은 허리로 종종 걷는 할머님들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 놀랍게도 20대와 30대, 혹은 10대까지 함께였다.

간혹 티켓이 없음에도 고척돔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우리 영웅이'와 함께하고자 온 영웅시대들도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다가, 고척돔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배웅하는 이들. 티켓이 없음에도 임영웅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과 콘서트장을 보러 온 이들. 그런 이들을 뒤로하며 공연장에 들어서려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지난 5월 첫 정규앨범 '아임 히어로(IM HERO)'를 발매한 임영웅은 동명의 데뷔 첫 전국 투어로 7개 도시에서 21회를 진행, 1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한 앙코르 공연에는 약 3만 4500명(3일 기준)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그리고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스카이돔. 트로트 가수 최초로 고척돔에 입성한 임영웅이 전국 투어의 화려한 피날레를 알렸다.

공연의 시작은 자작곡 '런던 보이(London Boy)'였다. 1만 8000여 관객 앞에서 자작곡으로 스타트를 끊는 배포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두 번째 곡 '무지개'가 큰 충격을 안겼다. 상큼 발랄한 전주와 귀여운 안무. 댄스 브레이크 때의 놀라운 춤 실력과 화려한 밴드까지.

팝 록(Pop rock) 장르의 '무지개'는 풋풋한 신인 아이돌의 수록곡을 연상케 했다. 임영웅을 트로트 가수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임영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임영웅을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능 엔터테인먼트 임영웅.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idol) 임영웅.

트로트를 불러도 그 반짝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빛났다. '보금자리'에서 임영웅은 '영웅시대만 있으면 돼'라고 노래하며 능청을 떨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은 늘 도망가', '사랑해 진짜', '손이 참 곱던 그대', '우리들의 블루스'까지. 공연이 무르익어갈수록 가창력 역시 빛났다.

또 한 번의 충격을 준 것은 '아비앙또(A bientot)' 무대였다. 먼저 10여분 가량의 '아비안도' VCR 시즌 2가 펼쳐졌다. '건행국'의 왕 '영종'으로 분한 임영웅은 재치있는 연기 실력을 뽐내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그리고 VCR이 끝나자, 숭례문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세트가 등장했다.

새하얀 사자탈을 쓴 이들의 사자춤, 신명나게 흔들리는 상모, 한복을 입은 댄서들. 흥겨운 국악 비트와 한국적 요소로 가득한 놀이판. 가마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임영웅은 하늘색 용포를 입고 그 한 가운데 섰다. 살랑거리는 웨이브와 댄서들과의 군무. 찰떡같이 쫄깃한 싱잉 랩과 설명할 필요 없는 가창력. 임영웅은 말 그대로 무대를 씹어먹었다.

누군가는 임영웅의 아이돌 적 모먼트로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를 꼽을 수도 있겠다. 실제 그는 러블리하고 새침하기까지 한 춤 선을 선보였다. 그러나 임영웅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춤을 추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셋리스트 중 트로트는 절반 가량에 불과했다. 그러나 트로트가 아니어도 영웅시대는 임영웅에게 환호했다. 셋리스트 중 절반은 트로트였다. 그럼에도 30대와 20대, 10대 영웅시대는 임영웅에게 환호했다.

8세부터 관람할 수 있는 임영웅의 콘서트에는 수능을 끝내고 온 10대부터 100세가 넘는 어르신까지 함께했다.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춤을 추는 것을 떠나 그는 누구에게나 아이돌이었다.

임영웅은 콘서트 내내 영웅시대의 안전을 염려했고, 플로어와 1층, 2층 그리고 3층과 4층의 함성을 체크했다. 관객들의 요청에 '소나기', '미워요' 등 한 소절을 부르는 깨알 같은 팬서비스도 있었다. 영웅시대를 넣어 개사했고 "별빛 같은 나의 사람들"이라며 인사했다. 또한 그는 "이번에는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온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순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묵묵히 지내온 여러분께. 아들, 손자, 오빠, 형, 친구 영웅이가 불러드리겠다"며 영웅시대의 곁으로 다가갔다.

공연 내내 임영웅은 '영웅시대'를 외쳤고, 관객들은 '임영웅'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관객들은 나이도, 성별도 모두 잊고 '영웅시대'가 됐다. 아이돌 임영웅의 힘이었다.

[사진 = 물고기뮤직 제공]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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