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강지훈 기자] 11일 두산 베어스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7-8로 석패하면서 홈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짓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두산 팬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있었으니 7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로 등장해 2타점 적시타를 터트린 김현수(22)의 부활이었다.
여전히 김현수의 플레이오프 성적은 형편없다. 7타수 1안타(.143), 포스트시즌을 통틀어서는 24타수 3안타(.125)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날 2타점은 김현수가 이번 포스트시즌 9경기만에 처음 뽑아낸 타점이었고 비록 유인구를 위해 일어선 포수 현재윤을 보고 뿌린 안지만의 공이 실투였을지라도 모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배트 중심에 맞아나간 타구였다.
1루 베이스에 안착해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는 김현수의 얼굴은 전날 병살타를 치고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한데다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쏟았던 장면과 대비돼 더욱 큰 감흥을 안겼다. 부담감을 이겨낸 김현수는 13일 열리는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맹활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0일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쏟은 김현수의 눈물을 보며 문득 떠오른 이는 1990년대 초중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였던 '빅허트' 프랭크 토마스다. 토마스는 1993-94년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MVP에 오르며 199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를 배리 본즈와 양분한 거목이다. 출루율과 OPS 1위를 4번, 타격, 장타율, 득점 1위를 한 번씩 했고 4차례 실버슬러거에 선정됐다.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통산 .301 521홈런(18위), 1704타점(22위)를 기록한 전설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김현수처럼 공교롭게 정규시즌에서 맹활약해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어 온 매체의 집중을 받은 후 포스트시즌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아픔이 있다. 악몽으로 기억되는 시리즈는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다. 왼발목 부상에서 돌아온 토마스는 이 해 .328 43홈런 143타점을 터트려 MVP 투표 2위, 올해의 재기선수상을 받았고 소속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로 이끌며 7년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려놓았다.
연일 시카고 지역언론은 '조 잭슨의 저주'를 풀 때가 왔다고 대서특필했으나 정작 디비전시리즈 무대에 오른 토마스는 3경기에서 9타수 무안타 0타점으로 완전히 침묵했고 팀은 와일드카드 시애틀에 3연패로 탈락했다. 토마스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가 오히려 독이 된 경우다.
2005년 화이트삭스가 88년만에 우승하던 감격의 순간마저도 관중석에서 지켜본 뒤 팀에서 쫓겨난 토마스는 이듬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270 39홈런 114타점을 뽑았고 오클랜드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악몽은 6년만에 그대로 재현됐다. 4경기에서 13타수 무안타 0타점 4삼진으로 또다시 침묵했고 여지없이 오클랜드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4연패로 무너졌다. 지난 9월 화이트삭스에서 영구결번으로 선정되면서 눈물을 쏟았던 토마스는 자신의 손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 가장 원통하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이룬 최고 타자에게도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은 은퇴 후에도 잊지 못하는 뼈아픈 기억이었던 셈이다.
최고수준의 타자가 부담감 때문에 큰 경기에서 무너지는 일은 김현수나 토마스처럼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 부담감을 이기고 눈물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하루 차이로 눈물과 웃음을 오 간 김현수가 2010년 포스트시즌을 해피엔딩의 역사로 바꿔놓을 수 있을지 플레이오프 5차전이 기다려진다.
[김현수(왼쪽)와 프랭크 토마스. 사진 = gettyimagekorea/멀티비츠]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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