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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지영 기자] 배우 이희준이 연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이희준은 지난 7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전우치'(극본 조명주 연출 강일수)에서 악역 강림을 연기했다. 그에게 '전우치'는 온통 처음 투성이었다. 사극이라는 장르, 비중 있는 악역, 와이어 액션 등 그가 적응해 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 상황에서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처음을 마주했다. 연기력 논란이다.
이희준은 전작 KBS 2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에서 방이숙(조윤희)과 함께 알콩달콩한 사랑을 맛깔나게 그려내 최대 수혜자라는 소리도 들었다.
"'전우치'는 나에게 보석 같은 경험"
비록 아픔을 줬지만 이희준은 늘 옆에서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차태현과 많은 가르침을 준 김갑수, 이 두 사람 만으로도 이희준은 '전우치'가 "값진 경험"이라고 말했다.
"사실 '전우치'를 통해 얻은 게 더 많아요. 난생 처음 대중들에게 욕을 들어서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같이 하는 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차)태현이 형, (김)갑수 선생님께 정말 많이 배우고 감독님도 '우리 이 논란 꼭 종식하자. 호평으로 가 보자'라고 끝까지 저를 믿어주셨어요. 제 입에 잘 안 붙고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결국 호평으로 해냈다는 것 자체가 보석 같은 경험이 됐죠."
이번 드라마에서 이희준에게 김갑수는 실제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연기력 논란이 일고 난 이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김갑수에게 물어봤다. '사극 연기가 무엇이냐'고. 혹여나 후배의 자존심이 다칠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김갑수는 이희준의 물음에 '우리 같이 답을 찾아 보자'라며 이희준과 끝없이 대화를 나눴다.
"'전우치'하면서 김갑수 선배님만 졸졸 따라다녔어요. 제가 '선배님, 진짜 사극 연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여쭤 보면 '강조할 말만 세게 발음해 보는 것은 어떠니', 혹은 '천천히 대사를 하는 건 어떨까'하시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언제 김갑수 선생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꿈 같아요."
김갑수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가득한 이희준은 '전우치' 최고의 장면으로 극중 김갑수가 연기했던 마숙의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김갑수 선생님이 죽어가시면 제 손을 잡았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둘 다 손을 안 놓고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있었어요. 뭔가 가슴 깊숙한 곳부터 울컥했죠. 언제 또 이렇게 선생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배울 수 있을까 싶어요."
사실 이희준은 '전우치'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을 확정했다. 남들보다 일찍 합류한 그는 다른 배우들보다 20일 앞서 촬영에 돌입하며 강일수 감독과 색다른 사극을 만들어 보기로 마음을 맞췄다.
"감독님과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한 부분이 대사 톤 이었어요. '우리 드라마는 퓨전 판타지 사극이니까 전형적인 대하사극 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라고 의견을 모았죠. 상투적인 모습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극적인 톤이 아니라 색다른 말투로 다른 버전의 사극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강일수 감독과 이희준의 의도와는 달리 '전우치'는 첫 방송 이후 이희준의 사극톤에 대한 악평이 쏟아졌다. '넝굴당'에서 이희준은 옆집 오빠 같은 푸근한 이미지였는데 '전우치' 속 굳은 표정에 어색한 사극 대사를 읊는 이희준의 달라진 모습은 낮설었다.
"첫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과 저는 좋아했어요. 신선하다고. '이렇게 나가면 새로운 사극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촬영을 6회까지 끝난 상태에서 첫 방송이 나갔는데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서 조금 놀랐어요. 다시 감독님과 회의에 들어갔죠. 결론은 '우리가 꿈꾸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구나' 였죠."
색다른 판타지 사극을 꿈꿨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혹평은 그를 흔들리게 했지만 더욱 다 잡아 주는 계기가 됐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제 마음이 많이 앞섰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런 비난이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끝나고 나서 다시 돌아 보니 이제 조금 알 것 같기도 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이제 막 이름을 알리며 유명해지던 그에게 '전우치'는 연기력 논란이라는 쓰디 쓴 아픔을 줬다. 혹시 후회하지는 않았을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그는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 다시 기회가 와도 '전우치'를 선택 했을 거에요. 물론 '넝굴당' 끝나고 천재용 같은 캐릭터로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른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천재용 같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면도 보여줘야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40~50대 쯤 됐을 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석규 선배님이 하셨던 세종대왕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도전할 거리가 없으면 멈추고 싶다"
이희준은 이제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드라마 연기를 벗고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통해 거친 야생소년을 연기한다. 연극 내내 4발로 기어 다녀야 한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말과 달리 무대를 앞둔 그에게 설렘이 느껴졌다.
"저에게 뜻깊은 작품이에요.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대학 1학년 때 졸업하던 선배들이 만든 창작극인데 제가 최고로 꼽는 공연 중 하나에요. 이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극단에 들어가게 됐고 지금의 제가 된거에요. 늘 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저랑 친한 형이 이 뮤지컬을 연출을 한다고 해서 바로 승낙했죠. 이때 아니면 제가 언제 이 역을 해 보겠어요?"
등산이 취미라는 이희준은 한 번 지나갔던 길은 절대 다시 가는 법이 없단다. 뻔히 가봤던 길을 가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는 저를 정말 못살게 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제 연기 인생의 방향이에요. 늦게 데뷔해서 '난 이것만 잘한다'고 한 역만 하는 것은 재미 없잖아요. 마일드 데이비스가 '나의 미래 계획은 안전하게 가자라는 생각이 들면 멈추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는데 이게 저와 맞는 것 같아요. 저도 '도전할 거리가 없으면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같은 길을 가는데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이희준.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지영 기자 jyou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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