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인천 안경남 기자] 단언컨대, 홍명보 감독은 제로톱을 알고 있다. 그는 아이티와의 평가전 후반 32분 이근호 대신 김보경을 투입하며 진짜 스트라이커 없이 최전방을 꾸렸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우리가 (아직) 완벽하게 이 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1명 퇴장 당한 느슨한 경기에서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제로톱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치렀다”며 제로톱 가동을 인정했다.
홍명보 감독은 아이티, 크로아티아전 명단을 발표하면서 “제로톱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티전에서 우리는 약 15분가량 제로톱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김보경, 구자철이 투톱처럼 전방에 섰고 이들은 기존의 스트라이커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큰 의미를 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경기 자체도 아이티가 10명이 되면서 다소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의 제로톱 시도는 주목할 만 했다. 아스날과 선덜랜드에서 각각 길을 잃은 박주영과 지동원이 안겨 준 숙제를, 홍명보 감독은 제로톱으로 풀기 시작했다.
아이티전은 홍명보호 출범 후 가장 포지션 스위칭이 많은 경기였다. 손흥민은 좌측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왔고 김보경(또는 이근호)과 구자철은 자주 미드필더 지역까지 내려오며 상대 수비를 유인했다. 그리고 이청용은 측면에 머물지 않고 중앙으로 이동했다. 후반 27분 득점 장면이 대표적이다. 구자철은 우측으로 넓게 이동했고 이청용은 중앙으로 들어와 상대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린 절묘한 전진패스를 이근호에게 찔러줬다. 이때 손흥민 재빠르게 쇄도했고 이근호는 논스톱으로 볼을 내줬다. 그리고 손흥민은 골키퍼를 여유 있게 제치고 4번째 골을 터트렸다.
앞서 후반 3분 이청용이 첫 페널티킥을 만드는 장면도 유사했다. 이때도 구자철은 우측으로 빠졌고 이청용은 중앙으로 이동해 전방으로 패스를 연결했다. 이것을 손흥민이 다시 쇄도하는 이청용에게 내줬고, 이청용은 영리한 동작으로 페널티킥을 이끌어냈다. 주심 판정에 다소 논란이 일어날만한 장면이었지만, 어쨌든 한국은 이것을 계기로 다시 리드를 잡는데 성공했다.
홍명보 감독에겐 과감한 변화였다. 그는 밸런스를 가장 중요시하는 감독 중 하나다. 이번 소집에서도 제일 먼저 한 훈련이 ‘포지셔닝’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앞’쪽에서 좌우 스위칭을 자주 시도하지 않는다. 잦은 포지션 체인지는 밸런스를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칭은 상대에게 혼란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공격은 화려해졌지만 이전에 홍명보호가 보여준 규율과 절제된 모습은 희미해졌다. 홍명보 감독이 대승에도 맘껏 웃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유럽파를 불러들여 처음으로 손발을 맞춘 경기였다. 기다렸던 골이 터진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제로톱 가동은 의미를 갖는다. 작금의 한국 축구는 ‘원톱’ 부재에 놓여 있다. 반면 ‘2선’ 자원은 포화상태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홍명보 감독도 제로톱에 대해 “하나의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홍명보 감독은 제로톱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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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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