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루틴야구를 파괴해야 한다.
삼성 야구의 최대 강점. 루틴야구다. 계산이 척척 되는 야구를 의미한다. 선발진이 5~6회를 2~3점으로 막아주면 타자들이 그보다 1~2점 많은 점수를 뽑아낸다. 장타력과 작전수행능력을 고루 갖췄다. 경기 후반엔 불펜진이 리드를 지켜낸다. 오승환이 등판할 때 1점만 앞서고 있다면 삼성의 루틴야구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올 시즌엔 공격력이 좋아져서 경기 중, 후반 2~3점 뒤진 상황에서 뒤집는 야구를 많이 했다. 대신 상대적으로 마운드의 힘은 약화됐다.
이번 한국시리즈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삼성 특유의 루틴야구가 초반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삼성은 흔들렸다. 대구 1~2차전을 모두 내준 뒤 잠실 3연전서 2승1패를 하며 승부를 다시 대구로 몰고 왔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시리즈 우승은 두산에 유리한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한국시리즈서 우승하려면 루틴야구를 깨야 한다는 말을 한다.
▲ 부메랑이 된 루틴야구
삼성은 2011년과 2012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올 시즌엔 정현욱과 권오준이 빠져나간 대신 뚜렷한 전력 보강 요소가 없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팜 시스템으로 최대한 전력을 유지했다. 루틴야구는 계속됐다. 예전보다 루틴야구의 힘 자체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전력 보강이 없고 마이너스만 있었으니 당연하다. LG, 넥센, 두산은 더 이상 삼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루틴야구는 곧 습관이다. 달리 말하면 습관적으로,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루트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세밀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기전이다. 상대도 삼성의 약해진 루틴야구를 알고 대응책을 내놓는데 삼성은 새로운 루틴을 내놓지 않고 기존의 루틴을 고수했다. 마운드가 살짝 약해지면서 타자들의 부담이 커졌다. 타자들이 꽉 막힐 땐 루틴도 함께 막혔다. 삼성은 한국시리즈서 2승 3패로 밀린 상황. 단기전서는 루틴야구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게 확인됐다.
▲ 루틴야구를 파괴한 벤덴헐크와 정병곤
류중일 감독은 29일 한국시리즈 5차전서 선발 요원 릭 벤덴헐크를 안지만에 이어 구원등판시켰다. 이번 한국시리즈서 차우찬과 함께 구위가 가장 좋은 투수다. 빠른 공으로 승부하는 벤덴헐크가 경기 막판 지친 두산 타자들을 상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결국 흐름을 갖고 온 삼성은 8회 박한이가 결승타를 뽑아냈다. 선발투수의 구원투입. 단기전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올해 삼성은 처음으로 시도한 전술이었다.
8회 박한이의 결승타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정병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두산 벤치는 정병곤이 희생번트를 댈 것으로 봤다. 삼성의 루틴야구 특성상 팀내에서 타격이 약한 정병곤에게 아웃카운트를 희생시킬 것으로 보고 압박수비를 펼쳤다. 정병곤은 이를 보기 좋게 깼다. 초구에 곧바로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 자세를 취해 중전안타를 뽑아냈다. 발 빠른 정형식이 희생번트를 댔고, 그렇게 1사 2,3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두산은 3~6번 클린업 쿼텟을 의식해 만루 작전을 쓰지 않았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바꿔 말하면, 벤덴헐크의 효과적인 계투와 정병곤의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가 없었다면 삼성은 두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는 삼성이 스스로 루틴야구 공식을 깬 것이었다. 두산은 정병곤의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 고무적인 점. 류중일 감독은 정병곤에게 희생번트를 주문했다. 결국 정병곤이 1,3루수가 전진 대시한데다 유격수와 2루수가 3루, 1루 커버를 위해 몇 발 움직인 걸 역이용한 것이다. 당시 두산의 내야압박은 75% 정도였다.
▲ 삼성은 6~7차전서 루틴을 완전히 깬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서 두산에 먼저 3패를 한 건 두산의 승리공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애당초 투타 전력이 삼성보다 불안했던 두산이 한국시리즈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제대로 예측이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두산 불펜이 포스트시즌서 잘 버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체력이 달려 무너질 줄 알았던 두산은 예상 외로 끈질기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오히려 상대의 대응을 늦춰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삼성이 이런 함정에 빠졌었다. 삼성이 연장 접전 끝 패배했던 2차전서도 결국 두산 불펜이 삼성과 대등한 승부를 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한국시리즈를 대구로 몰고 왔다. 6~7차전서는 자연스럽게 루틴야구를 파괴한다. 정공법은 5경기를 치르면서 내성이 됐다. 마침 6차전 선발로 예상된 벤덴헐크가 5차전서 구원등판하면서 6~7차전 마운드 운영이 꼬였다. 일단 6차전 선발은 벤덴헐크로 결정됐다. 하지만, 배영수, 차우찬 등의 구원등판도 충분히 가능하다. 두산에 혼란을 안겨둘 수 있는 부분이다.
타자들의 타격감각도 5차전서 살아났다. 타격감각이 살아났다는 건 좀 더 다양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두산의 움직임을 역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으로선 6차전만 잡아낸다면 흐름을 완전히 반전한 채로 최종 7차전을 맞이할 수 있다. 반대로 두산 입장에선 삼성이 계산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6~7차전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이 6~7차전서도 루틴야구를 깬다면, 그리고 두산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시리즈 우승 향방이 달라질 전망이다.
[밴덴헐크(위), 정병곤(가운데), 삼성 선수들(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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