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고양 김진성 기자] “선수가 감독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이 선수를 속이면 안 된다.”
9일 고양체육관. 오리온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둔 KGC인삼공사 이상범 감독은 “이런 생각을 한다. 훈련을 잘 시키고 전술적으로 준비를 잘 하는 감독이 좋은 지도자일까. 아니면 선수들에게 농구 내, 외적으로 교육을 잘 시키는 감독이 좋은 지도자일까.” 이 감독은 자문에 자답했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 경우엔 후자다. 농구만 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훈련이란 틀에 박혀있기만 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
이 감독에게 “선수들을 대하는 마음이 아버지 같다”라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이 감독은 “프로다. 승패에 울고 웃는 감독일 뿐이다”라면서도 “요즘 생각이 많다. 어떤 지도자가 돼야 하는지를. 그래도 내가 배운 게 있고, 커온 게 있다. 농구에만 가두면 안 될 것 같다”라고 했다. 단순히 KGC 선수들이 농구만 기계적으로 잘할 순 없다는 것.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다.
물론 이 감독은 “훈련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농구 선수들은 농구를 잘 해야 한다”라면서도 “틀에 박혀선 안 된다.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창의력을 키우게 해야 한다. 생각의 차이를 가져가고 싶다”라고 했다. 좀 더 뛰어난 선수, 나아가 성공한 농구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단순히 오늘 1경기만 잘해선 안 된다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다.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KGC인삼공사다. 두 외국인선수 숀 에반스와 마퀸 챈들러의 경기력 기복이 심하다. 주전 포인트가드 김태술은 왼쪽 무릎 부상으로 아예 이날 고양에 오지도 않았다. 간판센터 오세근 역시 “40% 기량밖에 발휘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오세근은 발 염증, 족저근막염 등 고질적인 부상 부위를 수술한 뒤 아직도 재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뛸 만하니까 조금씩 경기에 나설 뿐, 정상적인 경기력이 안 나온다.
이 감독 역시 부상자가 많은 KGC 선수들의 경기력이 100%가 아니라는 걸 감안하고 시즌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높이도, 스피드에서도 특색이 없는 KGC의 경기력은 지난 시즌보다 많이 떨어진다. 이 감독은 “생각했던 것보다 선수들의 몸이 더 안 올라온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이 감독은 팀 성적, 자신의 입지보다 더 중요한 게 KGC선수들의 건강이다. 그게 KGC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이 “감독이 선수를 속이면 안 된다”라는 말은, 감독이 자기 욕심을 채운답시고 선수들을 속여 무리하게 뛰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감독이 무작정 자신만 아픈 선수들을 이해해주고, 양보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이 감독의 철학이 나온다. 이 감독은 “좋은 농구선수는 농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 감독은 “세근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몸 상태가 정상의 30%라면 30%만 해라. 대신 나머지를 코트 밖에서 해줘라. 벤치에서 열심히 박수치고 격려하고,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주면 된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해줬다. 농구만 잘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감독이 “교육을 잘 시키는 지도자”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부터 선수들에게 농구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팀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희생정신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이 감독 스스로 그렇게 농구를 배웠고, 해왔다고 한다. KGC 선수들이 이 감독의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일까. KGC는 김태술이 빠진 상황에서 이원대, 김윤태, 전성현 등이 한발 더 뛰며 힘을 냈다. 작전타임엔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들이 경기에 뛰고 있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훈훈한 모습도 나왔다. 기본적인 경기력은 예년에 비해 많이 못 미친 KGC. 결국 경기 막판 수비 조직력이 흐트러지면서 패배했으나 리바운드 집중력, 루즈볼을 향한 의지 등은 나쁘지 않았다. 이 감독 역시 경기 후 "경기 내용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라고 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을 속이지 않았다. 경기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수들은 자기가 해낼 수 있는 몫을 해냈고, 나머지는 벤치에서 보충했다. 역시 농구는 개개인의 정신력과 집중력, 희생정신이 중요하다. 이 감독의 농구 철학.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KGC의 자세. KGC는 향후 오세근, 김태술의 몸 상태가 좋아지고 박찬희가 합류해 경기력이 좋아지더라도 이날 이 경기를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KGC는 이날 패배로 2승10패로 단독 최하위다. 그래도 졌지만 작은 의미가 있는 게임이었다.
[이상범 감독(위), 오세근(아래). 사진 = 고양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