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영화 '낮술'로 호평을 받은 노영석 감독이 '조난자들'이라는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경험담을 담은 '낮술'에 이어 '조난자들' 역시 철저하게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고립된 펜션과 낯선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 언 듯 보면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지만, 영화 속 곳곳에 살아 움직이는 듯 한 캐릭터들은 실제로 일어날법한, 또 여행에서 겪을만한 공포로 관객들의 숨통을 쥐고 흔든다.
'조난자들'은 홀로 깊은 산속에서 펜션을 찾아온 허세 여행자 상진이 우연히 만난 친절하지만, 그 친절이 불편하기만 학수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진다.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학수의 캐릭터에도 불편함은 느껴지지만, 학수가 전과자라는 사실은 상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직접 만난 노영석 감독은 "학수 같은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냐"고 반문했다. 학수 캐릭터는 노영석 감독이 실제로 만났었던 어떤 인물을 극화 시킨 캐릭터였다.
"학수 같은 사람은 늘 주변에 있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사람은 늘 있는 것처럼 학수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좀 더 과장되게 만드는 작업이다. 실제로 마주했던 학수(편의상 학수로 표현)는 묘하게 잘생겼었다. '이런 사람이 여기에 있네?'라는 느낌이었다. 지저분함 속에 느껴지는 잘생김. 숨겨진 사연이 있을 법 했다."
학수. 참으로 말이 많다. 게다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 '저란 사람은 곁에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주변에 늘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휴대전화도 없이 작업을 할 때가 있었다. 내가 원래 말이 빠르지도, 많지도 않은 사람이었는데,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니 말이 많아지더라. 어느 순간 내가 말을 빠르게,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학수도 그렇지 않았을까? 전과자고, 오랜만에 출소해서 만난 사람이 상진이다. 말이 많아 불편함을 주는 학수의 모습은 나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조난자들' 속 캐릭터들은 실제로 있을 법 하다.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캐릭터들은 작가의 의도대로가 아닌, 각자 뛰어노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는 노영석 감독의 관찰하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지적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손을 봤는데 흐릿한 문신이 있더라. 예쁜 문신이 아니었다. 그 문신을 본 뒤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해 졌다. 이런 것처럼 상반된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 흥미롭다."
'조난자들'에서는 학수만 흥미로운 인물은 아니다. 허세 가득하지만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은 상진 역시 눈길이 가는 캐릭터다. 이는 우리들 속에 숨겨진 내면의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낮술'도 그렇고 '조난자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이 겪는 일을 가상체험으로 관객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진은 보편적인 사람이다. 어쩌면 나 일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다. 우유부단하고, 보통의 사람보다는 좀 떨어지게, 그렇게 그리면 더 귀엽게 볼 것 같았다."
영화가 공개 된 후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조난당한 상황을 저 먼 곳에 내 던지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황당하기까지 한 결말이었지만, 이 역시 노영석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하하. 하지만 이것도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경험과 상상이 더해져서 나온 작품이니 당연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의문의 살인사건의 범인, 황당한 죽음 등 그런 것은 예고하고 오지 않는다. 그런 느낌의 엔딩을 주고 싶었다."
노영석 감독은 '낮술'로 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 로카르노국제영화제 NETPAC상 등 30여개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으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 후 5년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조난자들'이었다. 5년의 세월동안 노영석 감독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노영석 감독은 그 시간동안 여러 편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노 감독은 "그동안 놀기만 했었던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고, 결혼을 하고 아기가 태어났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의 '조난자들'이 아닌 다른 '조난자들' 시나리오 작업을 했었고, 다른 시나리오도 썼다"고 말했다.
쉬는 동안 밭에 씨뿌리는 작업을 한 셈이다. 현재는 5년이나 걸렸던 차기작 '조난자들'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5년의 공백이 있었던 만큼, 또 다른 작품은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노영석 감독, '조난자들' 스틸컷.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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