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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이석훈 감독은 카카오톡에 “바다로 갔다 산으로 갔다 철봉이 같은 운명”이라고 써놓았다. 1년전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선 바다, ‘히말라야’에선 산을 배경으로 힘들게 촬영했던 것을 산과 바다를 오가며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려준 철봉(유해진)에 빗대 재미있게 표현했다. ‘해적’은 866만 관객을 동원했다. ‘히말라야’는 개봉 4일 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천만 고지를 향한 힘찬 등정을 시작했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가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지만, ‘히말라야’의 벽을 넘지 못했다. ‘히말라야’의 흥행 속도를 감안하면 ‘해적’의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다.
이석훈 감독은 바다와 산을 배경으로 연달아 블록버스터를 찍은 최초의 연출가가 됐다. ‘해적’은 코미디가 두드러진 해양모험영화이고, ‘히말라야’는 휴머니즘이 도드라진 드라마로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두 영화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성에 대한 존중’이다.
‘해적’은 조선의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기 위해 해적과 산적이 바다에서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다. 고래가 국새를 삼킨다는 황당한 설정이었지만, 코미디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이석훈 감독의 연출과 화려한 볼거리가 맞물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는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이어지는 혼란기에 민중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국새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권력층을 비판한다. 남성-권력 중심의 세계의 반대편에서 중심을 잡는 축이 해월(손예진)-흑묘(설리)-고래로 이어지는 여성-연대다. 흑묘는 해월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고, 고래 역시 해월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고래는 암컷 어미다. 옥새는 사대주의의 상징물이다. 고래가 옥새를 삼키는 것은 권력에만 집착하는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히말라야’는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히말라야에서 조난당해 사망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엄홍길 대장(황정민)을 비롯한 산악인들이 다시 히말라야에 올랐던 감동 실화다.
실제 엄홍길 대장이 이끌었던 휴먼 원정대에는 여성이 없었다. 이석훈 감독은 여성 산악인 조명애(라미란) 캐릭터를 만들었다. 조명애는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체력을 갖춰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고 싶은 산악인이다. 그러나 후배 산악인 박무택(정우)을 위해 욕심을 내려놓는다.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타인을 위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엔 조명애 외에도 박무택의 부인 수영(정유미)과 엄홍길 대장의 부인(유선)이 등장한다. 에베레스트의 등정은 대부분 남성 산악인의 도전으로 기억되지만, 동료를 위해, 남편을 위해 앞에서나 뒤에서나 조용히 헌신한 여성의 노력도 잊지 말야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캐스팅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충무로에서 여배우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제작자들은 흥행을 보증하는 남성 톱스타 캐스팅에 혈안이 돼있고, 감독들 역시 액션과 스릴러 등 자극적인 영화를 선호하면서 여배우의 존재감은 예전에 비해 약해졌다. 이석훈 감독은 여성 캐릭터에 큰 비중을 두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그의 산과 바다는 늘 푸를 것이다.
[‘해적’ ‘히말라야’ 포스터, 이석훈 감독. 사진 제공 = 각 영화사, 마이데일리 DB]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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