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연극 ‘보도지침’은 이 시대 꼭 필요했던 연극임이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세상, 누군가는 소리쳐야 하고 모두를 깨워줘야 한다. 특히 연극은 허구의 이야기를 방패삼아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 연극을 하는 이들은 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물론 연극의 장르는 다양하다. 웃고 즐기는 연극이 있고, 심각하게 진실만 이야기 하는 연극이 있다. 한 장르로 묶어두기엔 어려운 복합장르도 많다. 이 가운데 ‘보도지침’은 가벼움보다는 무거움, 웃고 넘기는 이야기보다는 뼈있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연극이 가져야할 책임감에 더 집중했다.
하지만 실수를 했다. 제작사 엘에스엠컴퍼니 이성모 대표가 ‘보도지침’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홍보하는 과정에서 연극의 주 관객층을 한정시켜 버린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20~30대 여성 관객에게 큰 실례를 한 것. 작품에 너무 빠진 나머지 전체를 보지 못했다.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수 있는 공연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 이성모 대표 인터뷰의 요지였지만 이를 위해 가타부타 덧붙인 말이 화가 됐다. 한 배우의 페미니스트 언급까지 더해져 더 큰 화를 불렀다. 불쾌해진 관객들의 취소표가 쏟아졌고, ‘보도지침’ 측은 곧바로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사실 작품만으로 봤을 때 ‘보도지침’은 이 시대 꼭 필요한 연극임이 틀림없다. 대한민국 언론계의 흑역사 ‘보도지침’ 사건을 통해 언론계에서 자행되던 권력의 하부구조와 소통, 투쟁 과정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사회적 문제를 따끔하게 지적하기 때문. 제5공화국 시절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도 관통하는 지점이 있어 더 와닿는다.
또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하는 동시에 연극적인 아이디어를 집어넣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것도 영리한 방법이다. ‘보도지침’ 사건을 중심으로 사회적 문제를 말하고 있는 동시에 연극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돋보인다. 새로운 형태에 대한 시도와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초반 실언만 하지 않았다면 ‘보도지침’은 작품성만으로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저평가 받기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책임감을 갖고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연극이 꼭 가져야 할 자세를 잊어 실망감을 준 것을 덮어줄 수는 없다. 의도와 다르게 표현이 됐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겠으나 다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는 것.
이번 일을 통해 ‘보도지침’은 이 시대 꼭 필요한 연극이 가져야할 자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길 바란다. 작품에만 빠질 수밖에 없는 제작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연극의 3대요소가 무엇인가. 무대, 배우, 관객이다. 책임감을 갖고 만든 연극인만큼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돌리길 바란다.
연극 ‘보도지침’. 공연시간 110분. 오는 6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 씨어터.
[연극 ‘보도지침’ 출연진. 사진 = 벨라뮤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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