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엄마 손잡고 가자.” 아이는 도로 위 자동차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제 손을 내게 무심히 뻗는다. 손바닥을 제대로 포개지 않고 내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 대충 쥐었다.
아이가 자기 가고픈 쪽으로 향하며 내 손가락 두 개만 잡은 채 힘을 주는 통에 나도 모르게 “악!” 비명이 나왔다. 며칠 전부터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던 터였다. 관절염인 듯했다. 이미 작년에는 무릎 관절염으로 3개월 동안 약을 먹었다.
다시 병원에 가야 할지 고민하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친정엄마의 투박한 손이 떠올랐다. 엄마는 손톱 바로 아래 손가락 마디가 옆으로 휘었다.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가 올해 75세이니, 뼈 마디마디가 온전할 리 없다. 완치는 불가능하다. 그저 조심하고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으레 그런 사람인 것처럼 지냈다. 올해 엄마가 걷는 걸 너무 힘겨워할 때에야 제대로 병원에 모시고 갔다. 양쪽 무릎 관절 수술을 받고 척추 협착증을 확인했다.
“젊은 시절에 일을 많이 하셨나 봐요.”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재활병원을 모시고 갈 때마다 엄마를 본 모든 의사는 이같이 말했다. 엄마는 “일 별로 안 했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분명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왔다.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아빠였지, 엄마는 돈벌이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고. 살림은 뒷전이고, 끝내 당신이 원한 공부를 하며 지냈다. 단지 자식이 많고 풍족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새삼 의사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아이를 다섯 명이나 키웠는데 일을 많이 안 했을 리가 없음을.
내 어릴 적 사진 중에는 천 기저귀를 끼고 허리에 노란 고무줄이 대충 묶인 채 이불 위에 누워 있는 사진이 있다. 그걸 보고도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쭈그리고 앉아 찬물에 천 기저귀를 빨고 밤새 말렸다가 개킨 손길을. 아빠가 고생한 만큼, 엄마도 고생했음을.
엄마가 염증을 치료하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뒤 돌아왔다. 그러나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전처럼 편안히 걸을 수 없었다. 아픈 곳을 설명하려 해도, 살아온 세월을 한탄하려 해도 말로는 충분치 않았고, 충분히 들어 주는 이도 없다.
“내가 일을 많이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며 투박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중지와 약지 손끝 마디가 휘어진 손. 나는 그 손을 쳐다보는 걸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건 마치 내 원죄를 확인하는 일인 것만 같았다.
나는 뒤돌아서서 아이 물병을 설거지했다. 솔로 문지르는 손에 힘이 들어간 걸 느끼며, 다시 한번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엄마처럼 천 기저귀를 빨아 입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릎도 손가락도 아픈지 모르겠다. 작년에 의사는 내게 무릎 관절염 약을 처방하며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나아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아픈 데가 좀 나아졌을까?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