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주 기자] 잔잔하게 아름답다가 쾌감이 휘몰아친다. 클라이막스에서는 날카로운 해방감까지 전해지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이다.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악마에 사로잡힌 소년 희준(문우진)을 구마하기 위해 유니아 수녀(송혜교)와 미카엘라 수녀(전여빈)이 힘을 합하고, 이 과정에서 무속이 결합한다. 2015년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의 스핀오프기도 하다.
유니아 수녀와 미카엘라 수녀, 무당 효원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세 여성 캐릭터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쳤다가도 각자의 길을 간다. 김범신 신부의 제자이자, '기도발이 좋은' 것으로 잘 알려진 유니아 수녀는 희준을 만난 후 그의 몸에 깃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이에 구마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가톨릭 내의 의견 차이와 함께 '서품'을 받지 못했다는 벽에 부딪친다.
그런 유니아 수녀에게 한줄기 빛처럼 내려진 이가 미카엘라 수녀다. 미카엘라 수녀는 바오로 신부(이진욱)의 제자로, 구마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 데다 담배를 피우고 거친 언행과 과감한 선택을 이어가는 유니아 수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결국 "사람 살리는데 명분이 어딨어"라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의 여정에 녹아든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거칠게 사탕을 깨물어 씹고, 아이스크림과 탕후루를 입에 욱여넣는다.
무당 효원(김국희)은 유니아 수녀가 도움을 받고자 찾아간 인물로, 한때 그와 동료 수녀로서 일했던 인물이다. 희준의 구마를 위해 굿판을 벌이고 점을 보며 사력을 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담합에서 빠진다.
버석하고 까칠한 송혜교
얼핏보면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다시금 떠오르는 얼굴이다. 다만 조금 더 성스럽고 더더욱 과감하달까. 시작부터 스크린을 가득 메운 송혜교의 얼굴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시니컬한 눈빛을 툭 던진다. 구마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가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악마의 저주를 받아내고, 결국 "짜증나네"라는 말과 함께 희준의 입에 십자가를 밀어넣는다.
서품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에도 신경질적인 한 마디를 뱉을 뿐이다. 미카엘라 수녀가 악에 받쳐 "미친X"이라고 소리를 지를 때도,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주어진 길만을 걷는다. 집요하게도 무미건조하다.
"거짓 연기를 보여주기 싫었다"며 6개월 간 흡연 연습을 했다는 송혜교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완벽하게 유니아 수녀로서 관객을 만난다. 악령을 배에 품을 때에도, 불길을 걸을 때에도, 자신의 죽음을 코앞에 마주했을 때에도 물기 하나 없는 얼굴로 담담함을 유지한다. 특유의 절제된 연기가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톨릭과 무속의 결합
무당 효원 대신 유니아X미카엘라의 여정에 함께하기로 결정한 인물이 박수무당(신재휘)이다. 애동인데다, 말을 더듬는 탓에 무경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구마의식에 참여하고, 위기에 빠진 유니아와 미카엘라를 돕는다. 유니아 수녀는 애동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수 있도록 창문으로 의자를 던진다. 이와 함께 각자의 한계를 마주했던 세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다.
무속 외에도 영화 속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템이 타로카드다. 타로카드는 '귀태'(태어나면서부터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 아이를 일컫는 무속 용어)라는 운명을 지닌 미카엘라 수녀의 금기이자 숨 쉴 틈으로, 전여빈은 최근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니아가 '너도 제법이다'라는 말을 하자 미카엘라가 신나게 타로카드를 펼치며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전 그 순간이 미카엘라에게 '해제'의 순간이라고 느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결국 모든 소재가 '해방'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연결된다.
'검은 수녀들' 기자회견 당시 송혜교는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수녀가 하나가 되는 과정을 연기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즐거웠다"고 털어놨다. 그의 진심은 아름다운 미장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녹아내린다. 영화의 숭고한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해진다. 직관적으로, 매우 유려하다.
현재 상영 중. 러닝타임 114분.
이예주 기자 yeju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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