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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지영 기자] 무엇이 배우 고아라를 편견에 갇히게 했을까.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에서 고아라가 맡은 성나정은 거침없이 솔직하고, 쾌활하며 우리가 알고 있던 배우 고아라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응사' 고아라에 대해 "고아라의 재발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응사'가 시작하기 불과 1년 전, 고아라는 배우로서 과도기에 빠져 있었고,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3일 방송된 tvN '응사' 스페셜 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미지 변신을 원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두려움이 있어요. '내가 (나정이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이미지는 어떻게든 깰 수 있는데 약간 두려움이. 제가 사실 옥림이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하니까.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벽을 깨고 싶었어요."
'응답하라 1994'의 성나정 역할을 제안 받은 고아라는 제작진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으로 가슴 속 깊숙이 담아두었던 진심을 꺼내며 눈물을 흘렸다. '응답하라 1994'를 통해 그의 변신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제야 고아라의 눈물의 의미를 이해했다.
'배우 고아라를 너무 늦게 알아본 것이 섭섭치 않나'라는 질문에 고아라는 "그런 말 자체가 과찬입니다"라고 답했다.
"제가 무슨. 작품이 정말 좋았고 저는 행운아죠. 연기파 배우 오빠들이 잘 이끌어주셨고, 감독님의 무서운 관찰력과 작가님의 주옥같은 대사가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죠. 전 그냥 따라가기만 했을 뿐인데요."
어느 덧 10년 차 배우가 된 고아라는 비운의 여배우였다. 그는 2003년 '반올림'의 이옥림 역으로 어린 나이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아인오빠'를 쫓아다니며 연애를 하던 풋풋한 중학생은 어느새 성인이 돼 여러 역할로 성인식을 치렀지만 배우 고아라를 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흔히 말하는 연기력 논란은 그를 좌절하게 했고, 부진한 시청률은 고아라 연기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옥림이 트라우마'는 무명 아닌 무명 시절을 보내야 했던 고아라의 암흑기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정말 감사해요. 저를 믿어주셔서.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제가 나정이가 되는 것이 모험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저를 믿어주시고 도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솔직히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도 부족해요. 감독님과 작가님이랑 함께 할 수 있어서 저에게 2013년, 2014년은 잊을 수 없는 해가 됐어요."
'응답하라 1994'에 고아라의 캐스팅을 살펴보자면 의외로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원호 감독이 KBS에서 재직하던 시절, 중학생의 고아라를 만났다. 어린 고아라는 방송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KBS의 수위아저씨부터 화장실에서 만난 청소부 아주머니까지. 그런 고아라를 눈여겨 본 신원호 감독은 2013년, CJ E&M에서 고아라를 다시 만났다.
"그때의 저를 여태껏 기억해주셨다는 게 신기했죠. 그래서 나정이 역할과 제가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감독님이 관찰력이 굉장히 좋으세요. 메이킹 대본을 맞춰볼 때부터 항상 카메라로 찍으셨어요. 당시에는 왜 찍고 있는지 몰랐는데 그때 습관이나 말투가 대본에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저랑 비슷한 면이 더 많아졌죠. 진짜 신원호 감독님이 최고에요."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 덕분'이라고 말했지만 성나정을 연기하기 위해 고아라 역시 이미지 변신을 감행했다. 10년 동안 나름대로 이미지를 변신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부진한 시청률과 흥행성적은 그를 늘 제자리걸음하게 했다. 그래서 고아라는 성나정을 위해 많은 것을 바꿨다. 몸무게를 늘렸고, 처음으로 짧은 단발머리를 했다. 다른 여배우들의 시크한 단발머리가 아닌 지저분한 선머슴 같은 머리로.
"대본을 받자마자 제 머릿속에 나정이는 그런 머리를 한 아이였어요. 감독님이 되레 '괜찮겠냐'며 말리셨죠. 전 충분히 망가질 준비가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칼로 도려내고 부스스하게 만들었더니 바보 같은 남자아이 같았죠. 몸무게는 감독님이 초반에 더 찌우라고 많이 구박하셨어요. 최대로 찌운 게 4kg이었는데 나정이 먹성이 좋잖아요. 촬영하면서 조금 더 쪄서 7~8kg 정도 쪘네요. 그래서 더 나정이로 보였던 것 같아요."
'응사' 전 고아라의 이미지는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긴 생머리에 가냘픈 몸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는 그를 여성스러운 여배우로 기억하게 했다. 그의 의도와는 달리 이런 이미지는 그에 대한 오해를 낳았고, 그를 늘 대중과 한 발짝 떨어진 상태로 만들었다.
"예전에는 저를 보는 불편한 시선들이 있었어요. 저는 진짜 시골에서 소똥 냄새 맡으며 자란 아이였는데 서울깍쟁이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순댓국밥을 먹어도 맘 편하게 먹었던 적이 없었어요. 왠지 그래야할 것만 같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응사'를 하고 나서는 편하게 먹어도 '아, 나정이구나'라고 봐주세요. 늘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제가 다가가도 친근하게 받아주시니까 그게 정말 좋아요."
고아라는 이제 막 자신의 틀에서 한 꺼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나정이를 칭찬해주셔서 정말 좋아요. 가족이나 친구, 친척 분들은 저에게 나정이를 가리키며 '저게 너의 실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겠지?'라고 말하세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나정이를 조금 동급으로 봐 주시니까 저도 이제 한결 편안해졌어요. 나정이가 저에게는 참 많은 것을 가져다 줬네요."
[배우 고아라.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tvN 방송화면 캡처]
이지영 기자 jyou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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