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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의 음악노트]
2017년 1월1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통산 네 번째 메탈리카 내한공연이 열렸다. 나는 1998년 것을 뺀 나머지 공연을 모두 보았는데 그 중 가장 압도적이었던 건 단연 이번 고척 라이브였다. 음악을 빼고 따질 수 있는 것들 예컨대 무대와 퍼포먼스, 사운드에서 메탈리카는 이날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최대한을 펼친 느낌이다. 소리는 아름답도록 무지막지했고 영하에 기운 밤의 은밀함은 환상의 레이저쇼 앞에서 그 민낯을 낱낱이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오프닝은 베이비메탈(Babymetal)이었다. 웸블리 단독 라이브까지 소화해낸, 11년 전 툴(Tool)에 버금가는 이 파격적인 게스트를 하지만 나는 눈 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먼 거리, 느린 교통 등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공연장에 늦게 도착한 탓이다. 아이돌과 데스메탈을 뒤섞은 그 모습 그 음악을 직접 경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공연장에 왔을 때 그들은 이미 무대를 떠나 있었으므로 이제 남은 건 이날의 주인 메탈리카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메탈리카는 약속보다 40분 늦게 나타났다. 지난번 씨티브레이크 때와 같은 시간 어김이다. 콘, 림프 비즈킷, 디스터브드, 슬립낫,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등 각종 뉴메탈 배경음악을 장내에 깔면서 메탈리카는 지루한 신비감을 유지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AC/DC의 'Highway to Hell'이 나오면서부터였고 다시 AC/DC의 'It's a Long Way to the Top (If You Wanna Rock 'n' Roll)'이 흐르면서 장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곡은 메탈리카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 반드시 내보내는 시그널 송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돔구장 내 모든 빛이 사라진 뒤 모리꼬네의 음악('Ecstasy of Gold')과 레오네의 영상(<석양의 무법자>)이 나오면서 벽력 같은 관중의 함성이 일었다. 메탈리카가 무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뭔가 달랐다.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을 깡그리 쏟아붓겠다는 의지로 보였던 근작 [Hardwired…To Self-Destruct] 재킷의 추상화가 병풍 같은 다섯 스크린을 종횡무진 수놓을 때 이번 공연이 무대 장치에 얼마만큼 신경을 쏟을지도 분명해졌다. 그리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비록 공연 영화 <스루 더 네버> 만큼은 아니지만 그 영화의 주인공이 메탈리카였다는 사실을 나는 잠시 잊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공연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 스스로도 다른 것을 추구하는 듯 보였다. 현란한 이미지를 받치며 반복되던 'Hardwired'의 스네어 드럼 인트로가 곡으로 스며들면서 장내는 단박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짧고 극적인 공연 인트로가 건넨 감동의 후폭풍은 어마어마한 사운드와 더불어 관중들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두 번째 곡은 반드시 연주할 거라 예상했던 신보의 히트 싱글 'Atlas, Rise!'였는데 메탈리카는 이날 'Hardwired'와 이 곡을 포함 신보에 실린 5곡을 팬들에게 바쳤다. 그 중 'Now That We're Dead'와 'Halo on Fire'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황 연주되었다는 데서 의미를 띠었는데, 복잡하지 않고 직관을 추구한 전자의 기타 리프와 멜로디 동선이 다소 복잡한 후자의 서사는 그러나 똑같은 흥분을 팬들에게 안긴 듯 보였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신보와 더불어 가장 많은 레파토리를 쏟아낸 앨범은 단연 [Metallica](이하 '블랙앨범')였다. 'Sad but True', 'The Unforgiven'이 헤비니스와 고독을 머금어 고척돔을 적셨고 'Enter Sandman'의 드라이브감과 'Nothing Else Matters'의 멜랑콜리는 터프한 'Battery'와 함께 앙코르를 수놓았다. 의외 선곡은 'Wherever I May Roam'이었는데 글쓴이가 따로 아끼는 곡이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Harvester of Sorrow', 'The Four Horsemen'과 함께 이 곡은 이날 골수팬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물론 의외라는 것은 당연히 들려주어야 하는(또는 그래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곡들의 누락을 뜻하기도 해서 'Blackened'와 'Fuel', 'Hit the Lights'와 'Whiplash', 그리고 다른 라이브에서 늘 연주해온 씬 리지 커버곡 'Whiskey in the Jar'를 듣지 못한 건 아쉬웠다. 메가 히트작인 블랙앨범에서 'Holier than Thou'나 'Through the Never'를 듣고 싶었을 마음도 비단 나만의 바람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번 공연에 만점을 주고 싶다. 정승 마냥 우뚝 서 곡 마다에 주제를 부여한 다섯 폭 대형 스크린,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직접 전쟁 체험을 하게 해준 'One'의 레이저 폭격, 지미 헨드릭스를 추억한 커크 해밋의 광적인 퍼포먼스, 베이스를 들고 빙글빙글 돌았던 로버트 트루히오의 장난기, 두 귀에 쩍쩍 들러붙었던 라스 울리히의 근엄한 드럼 톤, 그리고 제임스 헷필드의 유일무이 카리스마는 두어 차례 노출된 밴드의 틀린 연주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듣는 공연에서 보는 공연으로의 진화. 메탈리카의 고척 스카이돔 내한공연을 나는 이 한 마디로 정의하고 싶다.
[사진 제공 = Access International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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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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