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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칸 황금종려상의 기쁨을 만끽할 시간도 없이, 봉준호 감독은 귀국 즉시 홍보 일정에 돌입했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지난 29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해가며 ‘기생충’의 세계를 들려줬다.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되는 두 가족의 걷잡을 수 없는 만남을 그린 영화. ‘설국열차’ 후반 작업을 하면서 구상했다. ‘설국열차’가 수평으로 나눠진 계급 갈등이라면, ‘기생충’은 수직으로 갈라진 계급 이야기가 아닌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설국열차’가 먼 세상 이야기였다면, ‘기생충’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죠. 그래서 하강이 중요했어요. 첫장면에서 반지하를 보여줄 때부터 카메라가 하강하는 이유입니다. 아, 계단도 있군요. ‘기생충’은 계단영화예요(웃음). 스태프들 모아 놓고 어느 계단 장면이 좋은지 콘테스트도 했어요. CG도 많이 썼어요. 거의 살신성인 수준이죠. 아무도 모를 정도로 감쪽 같아요.”
‘기생충’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보일러 김씨(변희봉)가 들려주는 괴담(물론, ‘기생충’과 같은 내용이 아니다)을 결합시킨 설정처럼 보인다. 그는 계단의 하강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하녀’와 조셉 로즈의 ‘서번트’를 다시 봤다. “역시 걸작이다”라고 탄복했다.
괴수영화 장르 ‘괴물’은 1.85:1로 찍었던 반면, ‘마더’를 2.35:1로 찍었던 그는 ‘기생충’에서도 길쭉한 화면을 선택했다. 직감이었다. 홍경표 촬영감독도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2.35:1이겠지?”라고 했다.
“이 화면비율로 인물을 클로즈업하면 위 아래가 짤리고 양 옆에 넓은 공간이 생겨요. 저는 거기서 이상한 불안감을 느껴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죠.”
극중 기택(송강호)의 장남 기우(최우식)는 누군가를 가르칠 때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봉준호 감독이 ‘앞으로 맹렬한 기세로 달릴테니, 꽉 붙잡고 있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게 봐주셨다면, 고맙죠(웃음). 박사장의 큰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요했어요. 감독은 논리보다 리듬과 템포로 통제하거든요. 그렇게 설득되고 휩쓸리는 거죠. 어떻게 보면 영화 자체가 음악적이에요.”
그는 ‘옥자’에 이어 정재일 음악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바로크 음악 분위기를 냈다. 인물들이 점잖은 척 하는 상황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대단한 ‘기세’로 관객을 휘몰아친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외국 관객은 곳곳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영어 자막이 한국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렸기 때문. 실제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달시 파켓이 꼼꼼하게 작업했고, 봉준호 감독도 미세한 부분까지 검수하며 완벽을 기했다.
“‘반지하’라는 말은 영어에 없어요. 그런데 칸에서 헝가리 기자가 자기 나라에도 있다고 반가워하더라고요. 반지하는 묘하잖아요. 지상에 걸치고 있지만, 더 안좋아지면 밑으로 내려갈 것 같은 계급적 불안감이 있죠. 우리 주변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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