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화란'에서 치건으로 변신한 송중기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않은 캐릭터"
[마이데일리 = 노한빈 기자] "누아르 영화를 해 보고 싶었지만 조직폭력배나 건달 영화를 말한 건 아니에요. '화란'처럼 어두운 정서를 갖고 있는 영화를 해 보고 싶었어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영화 '화란'의 주역 배우 송중기를 만났다.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드라마로, 76회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첫 선 보인 바 있다.
송중기는 냉혹한 현실 속 자신만의 생존법을 터득한 조직의 중간보스 치건 역을 맡았다. 치건은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사는 연규를 알아채고 손을 내미는 인물이다. 송중기는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서늘한 얼굴과 중저음의 보이스,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치건을 디테일하게 소화한다.
치건은 송중기가 지금껏 해온 작품들과 다른 분위기의 강렬함을 발산한다. 남다른 아우라는 물론, 전에 없던 새로운 얼굴로 깊은 여운을 선사하는 것이다. '화란'의 시나리오에 매료되어 노 개런티 출연을 자처할 만큼 작품에 큰 애정을 보였던 그는 "기존에 하던 연기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밝힌 만큼, 전작과 다른 매력의 캐릭터를 구축해 냈다.
이날 송중기는 "많은 분들이 제안해 주시고 결정 내릴 때 그 당시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영향을 미친다"며 "대본 제안해 주시는 것들을 봤을 때 다 비슷비슷하게 심심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찰나에 '화란'을 봤다. 상업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영화가 아니었다. 장르적으로 어두운 걸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컸던 때라 잘 맞았다"고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송중기는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청소년 드라마'라는 언급이 나온 걸 곱씹기도 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감사하고 공감이 많이 갔었다"며 "영화라고 꼭 무슨 메시지를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굳이 메시지가 세지면 영화적인 매력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제가 느꼈던 지점이 메시지로 해석될 수도 있겠더라"라고 말했다.
"간담회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어른들이 똑바로 잘 살아서 우리 아이들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줘야 되는 게 맞잖아요. 그게 느껴져서 대본 처음 봤을 때 좋았어요. 제 캐릭터가 성장하다가 멈춘,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않은 것 같은 캐릭터예요. 끝까지 그 친구를 좋은 데로 이끌지 못해서 비겁하게 떠났다고 표현한 건데 영화적으로는 그런 점이 재미있었어요."
"영화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이미지가 물고기"라는 송중기는 "치건이 큰 형님(김종수)이 벌려놓은 찌에 갇혀서 못 벗어나는 캐릭터를 계속 연상했다. 그 갇혀있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홍사빈 배우랑 '홍보할 때 낚시 프로그램을 나가야 되는 거 아냐'는 얘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치건이 자신의 경험을 남의 얘기처럼 돌려 말하는 장면을 떠올린 송중기는 "원래 실내 장소에서 하는 거였는데 감독님한테 저수지 가서 찍어야 할 것 같다고 제안해서 장소가 바뀌었다. 물고기의 정서가 계속 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찌에 갇혀서 답답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치건은 귀에도 큰 흉터가 있고, 온몸 군데군데 상처가 많은 캐릭터다. 이에 대해 송중기는 "등의 상처는 치건이의 서사를 설명하는 신이 적어서 이 친구가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기 위한 외적 장치였다"고 전했다.
이어 "치건이는 상징하는 게 귀, 연규는 눈"이라며 "그게 저희의 학대를 상징하는 거다. 가정폭력 피해를 표현한 거라서 외적으로 치건이는 오른쪽 귀, 연규는 왼쪽 상처가 보이게 맞췄다. 마주 앉아서 프로필 투샷을 찍었을 때 상처를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 당한 비슷한 경험을 가진 두 캐릭터가 한눈에 보이게끔 방향을 맞췄어요. 아무래도 영화 안에서 대사가 많은 영화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영화라서 외적으로 보여주는 걸 많이 신경 썼어요. 상징적으로 보여지게끔. 관객분들께서 그걸 알아차리시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노 개런티로 화제를 모은 송중기는 대신 공동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제작자는 저보다는 저희 대표님이 본업"이라면서 "'화란' 공동 제작은 제가 개런티를 안 받아서 미안하셨던 것 같다.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러닝 개런티를 가져가라고 하시더라"라고 얘기했다.
또한 "연출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면서 "연기나 똑바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중에 변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연출에 대한) 생각이 없다. 제작에는 관심이 많다. 기획하는 거에 재미를 많이 느낀다"고 기획에 대한 꿈을 고백했다. 심지어 나올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현재 기획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고.
캐스팅에 관여하기도 했는지 묻자 "관여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형서 씨가 캐스팅됐다는 얘기 들었을 때는 심각하게 신선했다. 형서 씨 본인의 평소 색깔이 있기 때문에 그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기뻤던 기억이 난다"고 돌이켰다.
홍사빈에 대해서는 "사빈 씨가 황정민 형님 회사에 있는 친구"라면서 "오디션 합격했다고 얘기를 듣고 황정민 선배님이 전화 주셨다. 잘 부탁한다고 전화 주신 적이 있는데 정민이 형님이 전화 때문에 더 빨리 정들고 그런 건 있을 텐데 참견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영화의 메인 주인공이 홍사빈 배우인데 처음 인사드리는 친구고 제가 그 친구보다 인지도가 있지 않냐"는 송중기는 "연규 중심으로 가야 되는 영화인데 '제 인지도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는데' 싶은 염려가 계속 있었다. 그래서 사빈 배우가 액션하는 거에 '나는 리액션만 하자'는 생각이 컸다"고 떠올렸다.
"이 친구가 정서를 다 끌고 가야 되고,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힘 빼고 '뭐 하려고 하지 말아보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쉽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까 욕심이 있어서 뭘 하려고 하더라고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려고 했어요. 그 시도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영화 개봉되고 피드백 받겠죠. 혹시 제가 틀린 선택을 했으면 또 혼나면 되는 거니까 그냥 한번 해 보자 싶었어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에 대해 "칸은 1도 생각 안 했었다"면서 "개인적으로 안 해 봤던 걸 해 보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칸을 가 본 적도 없었다. 영화 만들 때 칸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진 않지만 초대해 주시면 너무 영광이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새로운 영화, 새로운 걸 해 볼 수 있겠다는 만족감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송중기는 "지금도 기억난다. 헝가리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헝가리는 밤이고, 한국은 아침 5시쯤이었을 거다. 제작사 대표님이 전화 와서 칸에서 '주목할만한 영화'가 됐다더라. 그날 촬영은 망했다. 들떠서 집중이 안 되더라"라고 너스레 떨면서 벅찼던 당시 감정을 떠올렸다.
이어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좋은 건 사실이지 않냐. 너무 좋았다"며 "작품을 선택할 때 의미를 한 군데 두고 그게 맞다고 느껴지면 보람 돼서 만족하고 끝내는 편이다.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하나만 확실하게 이 작품을 한 이유가 있으면 만족한다. 칸이 절대적인 치수거나 지수는 아니지만 워낙 영광스러운 자리이기 때문에 보람이 느껴졌다. 처음 가봐서 너무너무 좋았다"고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더불어 송중기는 김창훈 감독에 대해 "만나기 전이 떠오른다"며 "대본 보고 '이 감독님 누구지' 싶었다. 나이가 생각보다 어리시다길래 걱정했다. '가정폭력 정서가 너무 세서 피해자이신 건가?' 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밝으셔서 다행이었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분 자체에 스산한 정서가 있으니까 쓰신 것 같아요. 대화 나눠보니까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굳이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어요. 처음이라 현장에서의 스킬이 해오신 분들에 비해서 부족할 수 있는데 제작사 분들이 베테랑이어서 채워가면서 했어요."
앞서 송중기는 이탈리아에서 배우로 활동했던 아내 케이티 루이즈 손더스가 칸에 갔을 당시 조언해 줬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날 그 비하인드를 밝혔다. 그는 "와이프가 지금은 배우 활동을 안 하고 있는데 큰 전 세계 영화제를 가 본 친구"라면서 "들뜨지 말라고 하더라. 까불지 말라는 뜻 같다. '어디 스파게티가 맛있더라', '어디가 식당이 더 많다' 그런 현실적인 얘기를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제작사에서 칸에서 상영된 파일을 와이프 보여주려고 보내주셨다"며 "한국에서 보면 자막이 없지 않냐. 영화 개봉하고 만나면 보여줄 생각이다"고 아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6월 아들을 품에 안은 숭중기. 아이를 갖고 삶의 반경이 넓어진 부분도 있었는지 묻자 그는 "이제 백일 지나서 모르겠다. 현실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며 "삶의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겠지만 아기가 생겨서 변화가 생겼다고 말하기엔 오그라드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제 직업이 유명한 배우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생겼을 때는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며 "제 직업이 많은 사람들한테 사소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지금은 거창한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육아하고 있다"고 했다. 또 "(아들이) 예뻐 죽겠다"는 팔불출 발언으로 아들을 향한 애정을 한껏 표했다.
노한빈 기자 beanhana@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