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영풍·MBK 손 들어준 법원…집중투표 이사 선임 불발
고려아연, 법원 제동에도 "집중투표제 도입 지속 추진"
[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고려아연의 임시 주주총회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해 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모양새다. 집중투표제로 열세인 지분을 만회하려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애초 취지에 맞춰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캐스팅보트로 지목된 국민연금이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최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최 회장 측이 이사회에서 우위를 지키는 데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MBK·영풍 연합이 제기한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인용됐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21일 영풍이 오는 23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의안상정 금지 등 가처분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유미개발이 집중투표 청구를 했던 지난해 12월10일 당시 고려아연의 정관은 명시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최 회장의 가족회사로 불리는 유미개발이 청구한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 의안을 임시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선 안 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로 가처분을 냈다.
유미개발은 지난해 12월 10일 고려아연에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했다. 당시 MBK·영풍은 고려아연 정관이 집중투표제 배제를 규정하고 있어 집중투표제 방식은 상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유미개발의 집중투표청구를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영풍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상법에 따라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경우 집중투표청구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조건부 청구는 정관 변경 후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법이 규정한 주주총회일 6주 전 청구 기한을 준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주주에게 1주당 이사 후보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통상 소수 주주에게 유리한 제도이지만, 이번 경영권 분쟁에선 MBK·영풍에 지분이 밀리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승부수라는 평가가 이어져 왔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 결정으로 2호와 3호 의안은 주총 안건으로 올릴 수 없게 된다. 2호는 '이사 수 상한이 19인임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제에 의한 이사 7인 선임의 건', 3호는 '이사 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제에 의한 이사 선임의 건' 등이다.
상정 안건은 4호 '이사 수 상한이 19인임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건', 5호는 '이사 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건'이다. 다만 이사 수 상한을 두는 정관 변경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 MBK·영풍의 의결권 지분은 46.7%이기 때문에 부결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이 가결되더라도 이번 임시주총에서 이사 선임은 집중투표제가 아닌 과반수 득표제 방식이 적용돼 영풍·MBK 측 이사 후보 14명 전원이 이사회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영풍·MBK 측 의결권 지분은 46.7%로 과반에 못 미치지만 의결권 행사를 마친 노르웨이연기금 등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지분과 주총 출석률 등을 고려하면 50% 달성이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 회장은 자체 지분(20.4%)과 현대차, 한화 등 우호지분을 합쳐 39.5%다. 영풍·MBK 측 이사 후보 14명 전원이 이사회 입성에 성공하면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12명 중 1명(장형진 영풍 고문)에 불과한 영풍·MBK 측 인사는 15명으로 늘어난다.
이번 가처분 인용 결정으로 영풍·MBK 연합은 지배권 확보에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 역시 애초 취지에 맞춰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안건과는 무관한 사항이라는 이유에서다.
고려아연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법원이 집중투표제가 도입됐을 경우 집중투표제에 따라 이사를 선임하는 이른바 '집중투표제 도입 조건부 이사선임 안건'에 대해 법조문에 근거 규정이 일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 외에도 이사 수 상한 설정과 발행주식 액면 분할,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 다양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런 제도가 도입돼 안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장기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를 지속해 검토하고 도입할 방침이다.
고려아연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과 국민연금, 소액주주연대, 그리고 울산 등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정치권의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핵심 기술진과 노동조합, 임직원이 한 뜻으로 투기적 사모펀드 MBK와 적자 제련 기업 영풍의 적대적 M&A 시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 국가전략기술 등 비철금속 세계1위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투기적 사모펀드 이익 회수의 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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