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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도하(카타르) 이현호 기자] 카타르가 개막전 상대국 에콰도르 선수들을 ‘매수’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약 나흘 앞둔 17일(현지시간)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카타르가 월드컵 개막전 상대인 에콰도르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연구지역 센터의 책임자인 암자트 타하의 주장에 따르면, 카타르가 승부조작을 제안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제보도 있었다. 카타르가 에콰도르 선수 8명에게 740만 달러(약 100억 원)를 지불해 카타르의 1-0 승리를 준비한다는 계획. 실력으로 이기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돈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제보였다.
이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다. 다른 나라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됐을 터. 하지만 카타르는 이전까지 월드컵에 단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는 축구 변방국이며, 2022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약 300조 원을 투자해 인프라를 구축한 ‘오일머니’ 강국이다. 이 때문에 그럴싸하게 들렸다.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달랐다. 20일 오후 7시 카타르 도하의 알 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A조 조별리그 1차전이 열렸다. 6만여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그중 80% 이상이 카타르 국민이었다.
개최국 카타르의 경기력은 형편없었다. 전반 3분 만에 실점했으나 VAR 판독으로 골이 취소됐다. 그리곤 16분에 에네르 발렌시아에게 페널티킥(PK) 실점을 내줬다. 곧이어 31분에는 발렌시아에게 헤더골을 먹혔다.
현장에서 본 에콰도르 선수들은 ‘매수’된 집단이 아니었다. 득점 찬스가 있을 때마다 벤치에 있는 모든 선수들은 세리머니하려고 달려 나갈 자세였다.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너나 할 거 없이 언성을 높였다. 8년 만에 나온 월드컵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실해 보였다.
오히려 카타르가 더 무기력했다. 카타르 선수들은 90분 동안 단 1개의 유효슛도 기록하지 못했다. 후반에 교체 투입된 모하메드 문타리의 발리슛이 윗그물에 얹힌 장면 외에 홈관중들을 설레게 하는 장면도 없었다. 교체 카드도 5장 중 2장만 사용했다. 이기고 싶다는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기자가 보기에도 카타르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는 실망스러웠다. 카타르 홈팬들은 오죽했을까. 홈 관중들은 하프타임부터 하나둘씩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후반 30분경에는 줄을 서서 나갔다. 기자석에 앉은 전 세계 취재진은 한동안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 출구를 지켜봤다.
불명예 기록도 썼다. 월드컵 역사상 개최국이 첫 경기에서 패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92년 만에 ‘개최국 첫 경기 패배’ 역사가 새로 나왔다. 경기장 내 전광판에 잡힌 카타르 국왕 셰리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 옆에 앉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역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카타르가 실제로 뇌물을 건넸는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기 어려울 듯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카타르는 이길 마음이 없었고, 에콰도르는 이기고 싶어 안달 난 하루였다.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현호 기자 hhh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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