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선배님만 믿겠습니다. 빨리 우승만 하게 해주십시오.”
KIA 타이거즈의 2024시즌 안방은 김태군(36)과 한준수(26)의 철저한 분업체제였다. 오히려 정규시즌에는 한준수가 조금 더 중용됐다. 한준수가 115경기서 600이닝, 김태군이 105경기서 641이닝을 각각 소화했다.
타격이 좀 더 필요한 경기에는 한준수, 수비가 좀 더 필요한 경기에는 김태군이 중용됐다. 한준수가 좌타자이니 상대 선발투수의 손에 따라서도 선발 포수가 자주 바뀌었다. 심지어 이범호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어깨가 좋은 한승택도 중용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시리즈에는 포수 3인체제가 꾸려졌다.
그러나 이범호 감독은 막상 한국시리즈가 되자 생각을 바꿨다. 5경기 내내 철저히 김태군 위주로 기용했다. 3차전에 스코어가 벌어지자 막판에 한준수를 잠시 기용한 게 전부였다. 한준수는 딱 한 타석에만 들어섰다. 한승택은 5경기 내내 벤치만 덮혔다.
알고 보니 이범호 감독이 미리 김태군에게 언질을 줬다. 김태군은 20일 김태균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의 유튜브 채널 김태균[KT52]에 출연, 한국시리즈를 돌아보며 “감독님이 부르더니 다 나가도 괜찮겠냐고 하더라. ‘감독님 밥만 주면 다 나갑니다’라고 했다. 2경기 정도 뛰면 1경기 쉬게 해주겠다고 하시길래 ‘감독님 밥만 주면 나간다니까요’라고 했다. 감독님이 그렇게 말할 때 약간 예감했다. 그냥 완전히 몰아붙이려고 하시는구나”라고 했다.
한국시리즈와도 같은 큰 경기는 베테랑의 존재감과 경험이 신예의 패기를 앞서는 경우가 많다. 실수 없이, 거의 매 순간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범호 감독은 김태군에게 확실하게 믿음을 주는 방향을 택했다.
김태군은 “책임감도 책임감인데 감독님이 그렇게 한, 두 마디 해줘서 내가 게임에 나가서 좀 더 신나게 했다. 감독님이 그렇게 말해줬는데 내가 주눅 들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라고 했다. 그렇게 김태군은 한국시리즈서 더욱 힘을 냈다.
단, 안 그래도 포수는 체력소모가 심한데, 한국시리즈는 1경기가 정규시즌 2~3경기 이상의 체력소모가 있다는 게 중론. 김태군은 서스펜디드가 포함된 1차전이 2박3일에 걸쳐 끝나자 “집에 가고 싶었다”라고 했다.
김태군의 얘기를 듣던 김태균은 아무래도 김태군이 전 경기에 나가면서 한준수가 서운한 마음이 있었을 수 있다고 짚었다. 김태군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시즌 때 좋은 활약을 했고, 준수도 준비를 많이 했을 것이고. 감독님이 기싸움에서 좀 더 좋은 기운을 갖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오히려 한준수는 김태군에게 감동적인 한 마디를 들었다. 김태군은 “준수하고 항상 씻을 때도 같이 연습하는데, ‘준수야 쉬어라, 형이 마무리 지을게’라고 했다. 그러니까 준수가 3차전 앞두고 ‘이제 선배님만 믿겠습니다. 진짜 빨리 우승만 하게 해주십시오. 후배가 그렇게 한 마디를 해주니까 재밌게 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한준수의 마음 씀씀이를 잘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김태군의 말대로 정규시즌서 잘 했다.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당연히 한국시리즈에 본인도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준수는 개인적인 감정은 감추고 대선배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팀의 우승을 진심으로 바랐다.
선배 김태군이 이끌고, 후배 한준수가 밀었다, 그렇게 KIA 안방이 V12의 초석을 다졌다. 이들은 당연히 V13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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