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강태식 연출은 고전의 힘을 믿는다. 물론 고전이 아닌 작품도 존중하지만 안톤 체홉을 만나지 않았다면 연출을 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고전의 힘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고전과의 연을 끊을 수가 없다.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나 고전이다. 이번엔 1920년 발견된 안톤체홉의 첫 번째 미완성 희곡이다. ‘2016 안톤체홉 연극 플라토노프’의 연출 및 각색을 맡은 강태식 연출을 만났다.
연극 ‘플라토노프’는 일상의 지루함에 빠져 삶의 권태를 느끼는 인물 플라토노프의 인생을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엇갈리는 우리의 실제 인생을 다루고 있는 작품. 강태식 연출은 오로지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믿음 하나로 미완성 작품을 무대화 했다.
“요즘은 순수 예술이 많은 콘텐츠에 밀려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장르예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순수 예술을 콘텐츠로 잡았죠. 물론 손해는 보는데 작품이 남으면 손해는 아닌 거죠. 많은 배우들이 거기에 동참해줬어요. 상업성에 치중했다면 이렇게 안 했겠죠. 그렇다고 상업성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작품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지타산이 안 맞아도 재밌게 가야해요. ‘미친놈’ 소리를 듣고 관계자들마저 깜짝 놀라도 가야 한다는 거죠.”
강태식 연출이 고전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꼭 장르를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안톤 체홉을 안 만났다면 연출을 안 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이번 작품은 아예 디렉션을 쓰지 않았다. 작품도 미완성인데다가 괜히 디렉션을 써놨다가 괜히 배우들이 추구하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게 안 맞을까봐 그렇게 했다”며 “그래서 테이블 작업을 오래 했고, 배우들도 힘들어 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배우들과 테이블 작업을 같이 했어요. 대본을 일찍 드렸죠. 5~6번 대본을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저 역시 그랬는걸요.(웃음) 그런데 활자를 보는 것과 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달라요. 그 때부터 캐치를 하는 건 저희들의 몫이에요. 그럴 때 ‘이런 맛이 나는구나’ 싶죠. 저는 방향성이 캐치되기만 하면 배우 예술이라 다 하게 돼있다고 믿어요. 연출은 배우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기 때문에 작품 외적으로는 터치를 전혀 하지 않고, 그들의 감성을 계속 보호해주려고 노력하죠.”
강태식 연출은 좋은 배우들과 함께 방향성을 잡아가면서 ‘플라토노프’의 기본적인 부분을 잡아 갔다. 사실 ‘플라토노프’는 인간의 본성을 앞으로 내밀면서도 그 이면에는 정치적, 사회적인 부분도 건드리는 작품. 그러나 이 같은 복잡한 부분들을 앞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강 연출은 “정치적, 사회적인 부분들이 앞으로 나와 버리면 재미가 없다. 그걸 일부러 다 날려 버린다. 텍스트에는 있지만 의미 부여는 하지 않는 것”이라며 “다 날려 버리지만 대신 그걸 누군가는 듣는다. 자기한테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꽂히는 것이다. 근데 멜로는 관심이 없어도 다 듣게 된다”고 설명했다.
강 연출은 이런 부분에서 ‘플라토노프’가 미완성 작품이 됐다고 봤다. 그는 “안톤 체홉 역시 어린 나이에 그런 부분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까 미완성 된 것 같기도 하다”며 “나 역시 하다 보니가 ‘아 완성 될 수 없구나’ 했다”고 말했다.
“근데 오히려 미완성이라 좋았어요.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너무 유명하고 다 아는 작품은 다 아는 연출, 유명한 배우들이 하니까 다 아는 틀이 돼버리더라고요. 그러나 이런 작품은 우리가 처음 접하니까 우리가 처음 채워주면 돼요. 더 좋은 계기가 되는 거죠. 부제도 스케치가 없는 도화지 위의 그림이에요. 기본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기본이 없는 삶을 많이 사는데 그걸 알지만 그렇지 않은 삶을 실천하기가 어렵잖아요.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우리 모습인 거죠.”
강태식 연출은 고전이라 해서 무조건 지루하고 어렵게만 보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특별하다거나 차별화 되지 않는다는 것. 일상이고, 우리가 꿈꿔왔던 것이라고 했다.
“연극이라는 것은 색다르게 만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항상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요. 살다가 말 안 되는 것들이 있으면 ‘연극 같아’라고 하는데 ‘플라토노프’는 그런 연극이에요. 여러분들이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고 오셔서 편안하게 보시고 편안하게 가시면 되죠. 고전이라고 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집에 가면 생각날 거예요.(웃음) 또 이번에 아름답고 좋은 극장에서 하게 됐어요. 좋은 극장에서 좋은 배우들, 좋은 스태프들과 하는 좋은 연극을 놓치면 안 된답니다.”
연극 ‘플라토노프’. 공연 시간 100분. 오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문의 드림컴퍼니 02-744-7661
[연극 ‘플라토노프’ 강태식 연출. 사진 = 드림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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