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사람은 오제에게서 뭘 뺏지 않고, 오제도 사람에게서 뭘 뺏지 않지.”
박혁지 감독의 ‘행복의 속도’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영화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광활한 습원 지대 ‘오제’에서 평균 10km 거리의 산장까지 80kg 안팎의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두 ‘봇카’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담는다. 이가라시가 아들에게 오제와 사람의 조화를 강조하는 대사 속에는 물욕을 내려놓고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특히 각박한 경쟁사회에 시달리는 한국인에게 이가라시의 인생관은 가슴 깊숙한 곳까지 울림을 전한다.
이가라시가 ‘현재’에 충실한 삶을 대변한다면, 이시타카는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는 ‘일본청년봇카대’를 만들어 이제는 사라져가는 직업인 봇카의 쓰임새를 넓히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의 삶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닮은 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봇카의 삶은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살 것인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며 살 것인가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이 맞닥뜨리는 실존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행복의 속도’의 모태가 된 EBS ‘길 위의 인생-인생을 짊어지고’(2016)에서 이가라시는 바람에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해발 1,500m 고지에 있는 오제에는 예측할 수 없는 강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온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봇카에게 바람은 반드시 겪어야하는 시련이다. 앞이나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옆에서 들이치는 바람은 봇카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그는 “신념과 심지가 제대로 있다면 나 자신이 흔들릴 일은 없다.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한다”고 했다. 바람은 신념을 꺾지 못한다.
두 인물을 통해 삶의 깊이를 담아내는 박혁지 감독의 연출관은 데뷔작 ‘춘희막이’(2015)에서도 도드라졌다. 홍역과 태풍으로 두 아들을 잃은 큰댁 막이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작은댁 춘희를 집안으로 들인다. 남편이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은 모녀인 듯, 자매인 듯, 친구인 듯한 관계를 46년간이나 유지하며 함께 살았다. ‘춘희막이’의 영어제목은 ‘With or Without you’였다. 당신이 있든 없든,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 오제와 봇카의 관계도 비슷하다. 박혁지 감독은 사람이든, 공간이든 오래도록 머무르는 사람들을 보듬는다.
‘춘희막이’의 할머니와 ‘행복의 속도’의 봇카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막이와 춘희 할머니는 전근대적 폐습의 희생양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내칠 수 없다는 ‘도리’를 버리지 않았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자부심을 갖고 오늘도 무거운 짐을 나른다.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는 ‘춘희막이’와 오제에 머무르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행복의 속도’는 ‘With or Without you’ 2부작이다.
박혁지 감독의 3부작이 기다려진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