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그거사전 |저자:홍성윤 |출판사: 인플루엔셜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디자이너 강은영] 해가 바뀐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새로운 숫자를 쓰는 게 여전히 낯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에는 어김없이 “그거 뭐더라”라는 말이 끼어든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인지 이 표현을 자주 쓰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그거 뭐더라’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말에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서점을 우연히 들렀다가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온 문장은 내 마음과 꼭 닮아있다.
“그거 있잖아. 그거에 ‘그거’”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은 먹다, 마시다, 걸치다, 살다, 쓰다, 거닐다, 일하다 등 7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는 주변에서 흔히 보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던 ‘그거’들이 담겨 있다.
각 중제목을 보니 마치 친구와 나눈 대화를 보는 듯하다.
예를 들어, 초밥 사이에 있는 먹지도 못하는 ‘그거’(인조 대잎), 진입 금지를 알리는 고깔 모양의 ‘그거’(라바콘),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춤을 추는 풍선 ‘그거’(스카이댄서) 같은 것이다.
알고 있던 사물의 ‘그거’도 많았지만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물건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스카이댄서라는 이름을 알고 나니 문득 가게 앞에서 춤추던 모습이 떠올랐다. 상상 속 그가 더욱 현란한 춤을 추는 듯 느껴졌다.
작가는 일상 속 수많은 ‘그거’가 눈에 밟혀 ‘그거’의 이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제조사에 전화를 걸고, 사전을 뒤지며, 100년도 더 된 특허 서류를 찾아내는 열정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말 어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막힌 변기를 뚫는 도구인 ‘뚫어뻥’은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해 무명의 설움을 겪고 있거나 반면, 포장재나 단열재로 사용하는 ‘버블랩’ 혹은 ‘에어캡’은 ‘뽁뽁이’라는 귀여운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작가는 일상 속 다양한 물건을 소재로 그 물건이 가진 의미, 추억, 철학 등을 위트 있게 풀어낸다.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물건에 새로운 시각을 더하며, 그 물건이 가지는 개인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이지만 이름을 모른다. 그래서 ‘그거’나 ‘이거’로 부르며 답답해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거’는 몰라도 상관없고 알아도 딱히 내세울 곳 없는, 보잘것없는 물건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는 이름과 의미와 쓸모가 있다. 흔하고 대단찮더라도 이름을 알면 달리 보인다. (프롤로그 4p.)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던가.
지난 주말, 스파클링 와인병을 열면서 위에 얹혀 있던 뮈즐레와 안주 봉지를 묶는 데 사용한 트위스트 타이를 잘 챙겨 놓았다. 그리고 <그거 사전>과 함께 촬영하며 그 특별함을 다시금 느껴본다.
|강은영. 책을 최고로 많이 읽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지 않은 북디자이너. '표1'보다 '표4'를 좋아한다.
북디자이너 강은영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